본문 바로가기
라이프/일상, 생각열기

문자

by 렌딜 2010. 9. 13.
728x90



























 

 
 < 문자만 보내면 싸우는 사람 >

  내게는 유독 짓궂게 대하고 싶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처음엔 편하게 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일 뿐인데,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그 친구를 놀리고 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씅(?)을 내는 일방적 상황이 되고만다. 고쳐야지 생각하면서도 매번 말로만 그런가보다. 언젠가 왔던 문자였었나, '니 말투는 너무 딱딱해 차갑게 느껴져' 난 그 문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끝내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내가 보낸 문자가 또 한없이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을까봐 말이다. 그 후로 난 문자를 보낼때면 별로 좋지 못한 습관이 생겼다. 꼭 문자를 보낼때 첫머리에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길동이~, 길동아, 길동 등등. 그리고 마지막엔 습관적으로 ㅋ,ㅎ를 남기게 되었다. 그래야 왠지 내가 웃고있다고, 전혀 냉정한 얼굴이 아니라고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내 문자가 어색한 친구들은 왜 처음에 이름을 쓰냐고 묻기도 한다. 그냥 그 문자를 받은 이후로 내게 생긴 일종의 강박관념인 것 같다.

  몇 일 전 의자에 반쯤 기대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그 친구였다. 정말 가끔씩 생각날 때 문자를 보내곤 했었기에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근데 이런거 밝혀도 되나? 적절히 수정해야겠쿤.)

오늘따라 배가 너무 아프네.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거 아니가ㅋ

하긴 너 때문에 내가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
>내가 니한테 뭐햇나ㅋ

ㅡㅡ 니 이런 태도가 짜증나고 신경쓰여.
>무서워서 말도 못하겟네.

  오랜만에 나눈 이야기였는데 이런식으로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나 하고 싶었는데 하던 공부를 다 끝낸 후 문자를 보내니 답장이 없었다. 밤이 깊어서 이미 꿈나라로 가버렸나 보다. 소꿉친구? 초등학교 입학실날 멋지게 교복을 차려입고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데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서로 알게 되었고 같은 음악학원을 다니며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같은 반이 되기도 하고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때면 항상 맨 처음 선물을 주고받던 친구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항상 연애상담을 내게 해왔기에 나는 그 친구가 좋아했던 아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고 있다. 집에 문이 잠겨있으면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쓴다고 집에 찾아간다음 컴퓨터로 게임을 하곤 했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안해도 되는데 열심히 방청소를 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어디 놀러간 기억도 없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적도 없고(물론 음악수업 제외ㅋ) 딱히 함께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우린 취미생활도 영 달라서 이야기를 나눌때 공부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주제도 없었던 것 같다.

  이건 그냥 남이네.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투정글일지도 모른다. 또 언제였더라, '나 남자친구 생겼는데 요즘 잘 되고 있어.' 이런 문자가 날아왔다. 너 남자친구 생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데 많이 좋은가보네ㅋ' 이런식으로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

답장이 늦네, 삐진건 아니겠지.
>ㅋㅋㅋㅋㅋ 별로 상관없는데.

남자친구 소개시켜줄려고 했는데, 미적이라고...
> ㅡㅡ 미적?

어, 요즘 미적하는데 좀 어렵지만 재밌어ㅋㅋㅋ

  돌이켜보면 항상 매를 버는 문자를 먼저 보낸 것 같은데 항상 끝에 가면 내가 나쁜놈이 되고만다. 더러운 세상. 그러나 그 친구도 내 삶의 일부가 맞나보다. 어렸을때에는 내 삶은 그저 나만의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나 혼자 잘나면 그만인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시련도 겪고 고통을 인내하면 깨달은 것은 내 존재의 미약함이었다. 그건 단순히 내가 부족하다의 개념을 벗어나서 인간이 지닌 숙명의 굴레와도 같았다. 그걸 깨부수려 노력도 해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로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건 나 혼자가 아닌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내 주위의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새롭게 보였다. 그들은 단순히 내게 친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이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 중 하나이다. 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문자든 통화든 대충대충 보내고 받는 편인데 그 친구 문자는 시간이 지나도 어렴풋이 파노라마처럼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부인하고 싶지만 정말 소중한 친구긴 친구인가보다. 언젠가 그 친구도 대학을 가고 아가씨가 되고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겠지. 그때까지 자주는 욕심일 것 같고 가끔씩이라도 연락하면서 옛추억을 떠올리고 싶다. 물론 그때가 되어도 우리의 관계는 놀리고 씅내는 일방적인 사이겠지만.


300x250

'라이프 > 일상, 생각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물 10회) 검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0) 2010.11.10
강승윤 - 치과에서 (기타코드)  (3) 2010.10.31
동네  (0) 2010.08.28
교실  (0) 2010.08.28
오민실  (1) 2010.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