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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짧은 글

정처

by 렌딜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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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


문을 열고 한 걸음 내딛었다. 싸늘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나 선실 안이라고 해서 더 따뜻하다거나 안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불어오는 이 바람이 가슴 속까지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겨울날의 바다는 깊고 어둡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심연의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손짓하는 섬뜩한 바다. 그 바다를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먼 망망대해에서 애타게 찾고 있을 부르짖음이 메아리가 되어 출렁거렸다.

반짝이는 별.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의 아름다운 빛깔이 바다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풍 있는 은은한 별빛. 바다 한 가운데에 홀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출렁거리지 않은 채 고요한 흐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고요한 빛줄기에 기쁨 반, 두려움 반. 문이 철컥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무언가를 떠들었다. 이윽고 등 뒤에서 내게도 누군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장님, 저 빛이 보이십니까.”


나는 묵묵히 답하지 않았다. 눈앞에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건 분명 등대의 빛이 분명합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말을 아꼈다. 차라리 저 빛이 별똥별의 잔해이길 바랬다. 깊고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너무도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현기증이 일었다. 예상도 못한 그 행운에 묘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선장님, 저 불빛은 분명 등대 빛 일겁니다. 별빛이라면 바다에 저렇게 인접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제 저희는 배에서 내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 등대가 어느 방향 쪽에 있습니까?”


“북쪽.”


순간 배 위에서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환호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분노마저 흘러나왔다. 또 다른 사내가 거친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선장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북쪽으로부터 계속 남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북쪽으로 간다고 말씀하십니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잘못된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되돌아 남쪽으로 가야합니다. 선장님, 제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저 불빛은 어느 쪽인 겁니까?”


“남쪽.”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배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불안은 언제나 쉽게 발길을 끊지 않는 법이다.


“선장님, 선장님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저기 등대 위 하늘에서 반짝이는 큰 별이 북극성인겁니까? 만약 저 별이 북극성이라면 우리는 북쪽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까?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북극성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요. 분명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것 맞는 겁니까?”


“북쪽.”


맵시 있는 옷차림에 도수 높아 보이는 안경까지 쓴 한 청년의 물음에 배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 틈 사이로 한 사내가 켁켁 거리며 말을 꺼냈다.


“여보시오, 선장. 여기가 북쪽이라고? 말도 안돼는 소리지. 이 향기를 맡아보시오. 이 향기는 분명 무궁화의 꽃향기란 말이오. 북쪽이라면 이런 꽃이 생생히 피어있을 리 없지 않겠소? 여기가 남쪽이 아니면 어디란 말이오. 저 등대에서 흘러나오는 무궁화 향을 맡고도 북쪽이라 말하겠소?”


“남쪽.”


어느덧 등대의 불빛에 눈이 찡그려질 정도로 가까이 닿아있었다. 모두들 침을 꿀꺽 삼키고, 말없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눈이 붉어진 채 사나운 눈초리로 주위의 동정을 보고 있었다. 비로소 우리는 등대에 다다랐다. 푸근한 흙냄새를 밟자 온몸에 잔뜩 품었던 긴장이 조금씩 녹아든다. 눈부시게 빛나던 등대 뒤에는 고요한 어둠과 어우러진 무궁화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북쪽도 남쪽도 그 어떤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오랜 시간 우리를 기다려오던, 그리고 우리가 찾아 헤매던 고향이다.


짐을 풀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일행을 뒤로 하고, 나는 배를 향했다. 다시 돌아온 부두에는 등대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색 바랜 비목만이 몰아치는 겨울바람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아, 저 멀리서 붉은 파도가 출렁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홀로 저 생명이 살아 숨쉬는 심장부를 향해 배를 이끌었다. 지금쯤이면 그들도 이 뜨거운 생명의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피와 눈물을 머금은 땅에서 그들이 뜨겁게 살아갈 때면 이 정처 없는 항해도 끝이 나겠지…….





언재 썻던 글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최인훈의 '광장'을 읽은 직 후 쓴 글이니 중2? 중3? 정도일듯 싶다.
다양한 결말이 있는데 가장 그럴싸한 걸로 올려본다.
요즘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어 퇴보하는 필력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1~5등까지는 모든 백일장과 공모전에 참여해야한다는 선생님의 엄명 앞에
열심히 참가는 하고 있다.(;;)
어쨋든 그럴싸해 보이는 글인 것 같다.
남북관계 등등 여러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 글을 썻을 때의 내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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