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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저장소

소풍

by 렌딜 201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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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시간.

소풍을 다녀와서 (4/17)


 


“생일 축하합니다.”

작은 케이크에 18살을 의미하는 촛불이 피어올랐다. 초가 케이크를 가득 채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미소를 띠며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의 얼굴이 조금씩 흐려졌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우리의 작은 파티가 매우 엉성해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 만이었을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친구들의 따뜻함이 꺼져버린 촛불을 대신해 여전히 일렁거린다.


약간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마음을 다잡던 시기였기에 소풍을 단순히 즐길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시험기간을 앞둔 지금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를 만큼 어리석진 않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일에 대해 한숨을 쉬는 것이 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모두에게 공정하게 주어지는 하루를 보다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목원엔 유치원생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나 역시 유치원을 다닐 적부터 자주 왔던 곳이기에 수목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지만 다시 찾아간 수목원은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열대식물원과 수종식물원, 처음 보는 희귀한 동물들이 가득한 야생동물원까지 자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가까운 진주에 있다고 제주도나 다른 식물원에 비해 과소평가를 하던 것은 아닐까. 나 자신,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마저도 자연은 감싸 안으려는지 서늘한 바람이 괜찮다며 콧등을 간질였다. 새로운 장소와 마주칠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놓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이름 모를 작은 풀꽃을 비롯해서 갖가지 꽃나무들이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눈앞의 사진은 평면이었지만 생생한 감촉과 풋풋한 향기는 마치 높이 솟은 나무들 아래서 흙바닥을 밟고 선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잠시 후 우리 반은 모두 모여 게임을 진행했다. 첫 번째 게임은 약간 늦어서 참여를 못하고 두 번째 닭싸움에 참여를 했다. 어렸을 때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하는 닭싸움이라 적잖게 긴장이 되었다. 간단히 예선을 뚫고 1대1 토너먼트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예선을 거친 뒤라서 그런지 남은 친구들 모두 하나같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리가 후들거려 그냥 쓰러져버릴까 고민 할 때쯤이면 상대 친구가 넘어졌다. 닭싸움을 보고 누가 힘 혹은 기술의 게임이라고 했던가. 계속 되는 경기에 이미 양 다리는 감각을 잃었고 그저 정신력만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정신력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각오로 임하다 보니 어느덧 결승전까지 진출해버려서 쉽게 포기하고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주위 친구들의 환호를 아드레날린으로 삼아 빨간 기를 쫓는 소처럼 내달렸다. 결국 상대 친구가 발에 쥐가 나면서 이를 악물고 버틴 결과 닭싸움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공부만 하는 학생은 몸이 허약하다는 편견을 깨버리자 담임선생님께서도 조금은 놀라셨는지 혹은 재밌으셨는지 웃으시며 상금을 주셨다. 마치 장학금을 받는 것처럼 어깨가 으쓱였다. 닭싸움 우승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헹가래도 받았다. 이것이 진정 하늘을 나는 것일까. 비행기로는 느낄 수 없었던 인간의 비행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닭싸움이 끝난 후에는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쓰러져 버렸다.

소풍을 마치고 친구들과 잔디밭에 모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었다. 이틀 전에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생일파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함께 해준 상규와 효림, 승철, 예상, 성록, 승득, 영호를 비롯해서 기차 시간 때문에 문자와 전화로 대신 전해준 친구들의 축하에 가슴이 뭉클했다. 너무 피곤했었을까. 그 이후의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오늘 이 순간이 그 어떤 날보다 조금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다소 멋쩍은 미소를 띠우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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