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책

'데미안'을 읽고

by 렌딜 2010. 8. 19.
728x90

무엇을 깨야하는가.

렌딜 (missrendil.tistory.com)

 


별이 빛나는 밤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별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별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담곤 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단순하게 빛나는 것을 뛰어넘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한 별들은 언제부터인가 밤하늘에서 하나 둘 사라졌다. 지금 바라본 밤하늘엔 별이라고 부를 것이 없었다. 소망은 세계를 만든다. 별은 곧 세계이다. 그러나 세계는 사라졌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누구도 그 사실을 의문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나의 세계는 어디서 피어오르는가.
이 세상엔 항상 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것은 惡이 있기에 우리들에게 부각되고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부모의 경우 그들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착하거나 옳은 것만을 가르친다. 이는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둘도 없는 현명한 방법인 듯 보인다. 그러나 배우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착한 것, 옳은 것만 배우던 싱클레어는 선한 세상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머를 통해 알게 된 어두운 악의 세계가 자신 내면에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갈등과 방황으로 점점 타락해 간다. 악을 경험해보지 않은 선은 어리석은 순진함이다. 오로지 선한 세상만을 꿈꾸며 선만을 지향하는 것은 신에게 의지한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고 데미안은 말한다. 또한 인간은 신의 품속에서 보살핌만을 받다가 선악과를 먹게 됨으로써 지금에 이르는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고 그는 외친다. 그렇다면 악, 그 것은 무엇인가. 방화, 살인, 절도, 탐욕…. 이런 것만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늘이 있을 때 진정으로 햇빛은 빛난다. 이처럼 선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악이 존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악, 빛과 어둠을 조화롭게 통일시킨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이라는 헤세의 의견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선과 악을 조화롭게 통일시킨다. 하지만 이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눈에 보이는 정확한 형체도 없는 것을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멋대로 구분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데미안을 만나면서 자신의 갈등의 답을 찾아 헤매던 싱클레어는 지구 위로 날아오르려 하는 새의 그림을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러자 데미안은 날아오르려는 새와 아브락사스에 대해서 쓴 답장을 보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선과 악. 단 두 가지만이 존재하는 이분법 앞에서 새는 투쟁한다. 인간은 선이라는 벽 속에 자신의 마음을 갇혀두고 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싱클레어도 처음에는 절대적인 선이라는 벽 속에 갇혀서 갑자기 나타난 악의 등장에 깊은 혼란에 빠져든다. 하지만 데미안의 도움으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진실 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곧 선과 악을 조화롭게 통일시킨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벽을 깨는 것과 같다. 그 벽을 깨었을 때, 갇혀있는 마음이 자유롭게 해방되어 모든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미안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한다. 어떤 이는 타락한 민주주의로 인한 사회적 부조리를, 또 다른 이는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세상의 편협함을 깨버려야 한다고 함께 외친다. 옳은 말이다. 누구에게나 있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세계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것을 깨고 나올 권리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다. 하나의 세계를 깨는 과정은 너무도 험난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힘으로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오려는 작은 아기 새의 눈물나는 투쟁처럼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그 과정이 바로 자기완성이며 인간으로서의 자립이다. 그 것을 싱클레어는 깨닫게 된 것이다.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깨었을 때 그에게 걸 맞는 하나의 세계가 다시 창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굴레가 있기에 아직 세계가 유지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밤이 많이 깊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또 하나의 싱클레어가 되어 데미안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지녔던 선입관과 고정관념, 그 외의 모든 편협했던 사고를 깨기 위해 숨을 삼켰다. 짧은 시간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내게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를 깬다는 것은 참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적인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해 내 마음 속에 굳어진 벽의 일부분을 깨면서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빛 하나 없었던 깊은 밤하늘에 희미한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음에 데미안의 얼굴이 살며시 떠올랐다. 그의 미소 역시 매력적이었다.

중3때 썼던 글 같다. 귀찮아서 퇴고는 꿈에도 못 꾸고 어쩌면 그때의 글솜씨가 더 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참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남겼던 시기였고 여전히 그 의문에 명백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귀여운 후배가 이 글을 읽고 도움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올려본다.

missrendil.tistory.com

300x250

'리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0) 2015.04.13
(책) 게이샤의 노래  (0) 2013.08.26
'운영전'을 읽고  (5) 201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