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저장소

나약하다.

by 렌딜 2010. 5. 17.
728x90

2010. 5. 15.

  오늘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음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백일장에 나갔다가 우연하게 밴드부 공연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음악에 재능은 없지만 관심은 많이 있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밴드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게 나의 꿈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약간은 해이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 시사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끝없는 좌절감과 한 개인의 힘,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얼마나 나약한가 하는 것이 전부였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점점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졌고 더 크게는 미약한 한 개인이 발버둥친다고 이 세상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는 좌절이 맴돌았다. 
  그러던 중 밴드부 리허설을 보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무대 위에서는 저녁에 있을 공연을 준비해서 음을 조율하고 서로 리듬을 맞춰보는 밴드부들의 연습이 있었다. 전에 그들을 볼때면 수업시간에 매일 잠이나 자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가끔 그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생각이었을까. 나는 단순히 그들의 일부분만을 바라보고 꿈도 열정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직접 기타를 튜닝하고 음을 맞춘 후 짧게 공연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동적이고 살아숨쉬는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패기, 노력, 열정.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그들의 살아있음을 그리고 소리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백일장이 끝난 후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본공연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여전히 그 울림은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저녁 8시. 보고싶었던 친구와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서로 엇갈려버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혹시 짧게 입고와서 추울까봐 외투도 챙겨 나갔는데 이미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런 ㅇㅁㄴㄹㄴㄹㄴㅁㄹㄴ마ㅓㄻㄴㄹㄴㅁㅇ러나 밖에서 기다리게 한 내 잘못이지. 그래도 아쉬움을 헤아릴 길이 없어 정처없이 길을 걸었다. 단 한시간이라도 공연장에 가서 그들의 열정적인 노래를 들으며, 젊다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 오늘날 우리는 공부와 성적이라는 단순한 상관관계에 너무도 얽매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언제나 내게 성적 투정을 부리는 그 애와 함께 느끼고 싶었다. 우리는 젊고, 살아숨쉬고 있고, 지금 저 세상이 터져라 울려퍼지는 노래들처럼 세상에 거칠 것 없이 내달릴 수 있는 열정이 있다는 것을 속삭이고 싶었다. 공부를 단순히 어렵고 뚫고 지나가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역시 우리가 젊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즐기는 태도를 가지자. 놀 때는 열심히 놀고 공부할 때는 정말 후회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하고 싶은 것들 참지 말고 즐기고, 그에 따른 피해는 스스로 책임을 지자고.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말 값지고 의미있게 사용하자고 약속하고 싶었다. 대기를 가르는 일렉기타 소리와 드럼의 거친 비트 속에서, 바로 옆에서 들리는 환호성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고 싶었다.
  한낱 꿈이었던가. 결국 우리는 만났지만 정말 짧은 시간동안 서로에게 퉁명스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 나 혼자 퉁명스러웠던걸까.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눈을 감으면 함께 소리치며 젊음을 느끼고 그 속에서 뭔가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눈을 뜬 세상에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한걸음 떨어져서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무언가 해보려 하지만,
  정작 실천에 옮겼을 때는 너무도 늦어버린 후다. 그래서 항상 나의 문을 닫아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들어와 또 무언가를 꿈꾸고 기대하게 만들까봐 먼저 피해버린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익숙해진 내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나고 부끄럽다. 벗어나야지 생각은 하지만 역시 생각뿐이다.

300x250

'기타 > 저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증  (0) 2010.05.19
체육대회  (2) 2010.05.18
행군  (0) 2010.05.15
소풍  (0) 2010.05.15
수학여행  (0) 201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