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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짧은 글

소풍감상문

by 렌딜 201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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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상상

‘소풍’을 다녀와서


새벽부터 분주해지는 소풍날이다. 한번쯤은 그냥 사서 먹어 라고 할 법도 한데 소풍 때마다 빠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셔서 김밥을 싸주시는 어머니를 보니 출발하기 전부터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볍게 목도 풀었다. 자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부를 노래 준비에 나름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뜬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소풍 장소는 선암사와 낙안읍성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한 번씩 아니 두세 번 가본 곳이었기에 새로운 장소에 대한 설렘보다는 실망감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보단 친구들과 모여 추억을 남기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서 우리 5반 단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런닝맨’과 ‘슈퍼스타 G’ ! 런닝맨은 보물찾기 겸 술래잡기와 비슷한 게임이고 슈퍼스타G는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슈퍼스타K를 모방해서 우리 반 친구들 한명 한명이 모두 참가자가 되어 3인 1조로 노래대결을 펼치는 장기자랑 같은 게임이었다. 완벽한 진행을 위해 사전에 규칙과 진행방식, 각 조에 노래를 배정했다. 다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고 꺼려하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결정되고 나니 쉬는 시간만 되면 쓰러져 자기 바쁘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곡 선정을 하고 노래와 안무 계획을 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순천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계속 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MP3를 들으면서 노래를 익히거나 같은 조끼리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연습을 하느라 분주했다. 우리 조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약간 변형해서 락으로 준비를 했는데 전날 충분히 연습을 했기에 자신만만했다. 옆자리의 승철이 조에서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걸구밖에 난 몰라’로 개사하여 큰 웃음을 준비했다.

어느새 선암사에 도착을 했다. 절로 걸어가는 길에 나무가 늘어선 모습을 보니 뭐랄까 자연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옛 사람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암기하기 바쁘던 공부와는 달리 몸소 그들의 마음을 체험하는 독특한 기분이었다. 계곡물에서 친구들과 복불복으로 장난을 치다가 곧이어 낙안읍성으로 이동을 했다. 한 3~4시간이었던 예정과 달리 2시간으로 일정이 줄어들어서 아쉽게도 런닝맨과 슈퍼스타G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다들 부끄러운 건가.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분위기에 따라 런닝맨만 하기로 했다. 우리는 등짝에 별명을 쓴 종이를 붙이고 발에는 방울을 달고 낙안읍성으로 진격했다. 평화롭던 낙안읍성은 삽시간에 때 아닌 전쟁으로 분주해졌다. 사방에서 경찰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구석에 숨고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담을 타고 도망치는 액션이 난무했다. 나는 일단 최대한 멀리 도망쳐 망루에 올라가서 전체적인 상황을 살폈다. 한쪽에 경찰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대편으로 가서 보물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보니 6000원이 쓰인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한다니깐. 자신감이 붙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경찰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살며시 발걸음을 향했다. 자만했던 것일까, 가는 길에 경찰 두 명을 따돌렸지만 끊임없이 나타나는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결국 갇히면서 잡혔다. 실제로 중요한 순간에 잡힌 것처럼 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뛰어다니며 놀다보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단 한 시간만 더 주어질 수는 없을까.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련이 컸던 것일까. 그날 저녁 꿈속에서 우리는 각기 준비했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실제상황처럼 생생한 장면에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었기를 하며 모난 상상에 빠져들었다. 물론 충분히 즐거운 추억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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