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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 생각열기

세상은 여전히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by 렌딜 201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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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정보산업이 빠르게 발달해감에 따라 세계적으로 큰 변화의 물결을 겪고 있다. 자유와 개성의 물결은 기존의 구시대적인 관습들을 타파하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이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여전히 사회의 많은 부분들에서 구시대의 잔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전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민족 고유의 혼, 얼, 전통 등으로 세습되어 반드시 보존되어야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보았을 때 과거의 전통이라는 좋은 방패막이 뒤에 숨어 진정으로 자본주의에 입각한 민주사회를 이루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이 자명하다.



 


 

논제

자공이 여쭈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자공이 여쭈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미워한다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고을 사람들 중에서 선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학기 초 사천 구암제라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장원을 한 적이 있다. 시상식과 제례가 있다고 해서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일찍 식장으로 이동했다. 식장에서 관계자분들께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냥 여기서 식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말씀하시고는 바쁘신지 휑하니 가버렸다. 탐화를 급제한 친구와 함께 무료하게 주위를 서성이며 시간이 가는 것을 기다렸으나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식이 시작될 것 같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20여분을 기다렸을까. 기다리다 지친 다른 학교 지도선생님께서 관계자분들을 찾아다니다가 담당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담당자분께서는 왜 여기에 있냐며 빨리 서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서원에서 제를 올린다고 말이다. 서원이라니, 아무런 사전 연락조차 없이 식장으로 오라고 해놓고 어딨는지도 모를 서원을 어떻게 찾아 간단 말인가. 허겁지겁 차를 타고 10여분만에 서원에 도착해 길게 뻗은 계단을 한걸음에 내달려 서원 입구에 들어섰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서원 안의 모습은 가관 그 자체였다. 일면식도 없는 한 학생이 장원으로 보이는 예복을 입고 내 이름이 쓰여진 교지를 들고 있었다. 이미 제를 다 올렸는지 정리하느라 부산하면서도 진행자는 수고했다며 그 정체불명의 학생에게 격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참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보니 그 학생은 부근 고등학교 자원봉사자들 중 한명이었다. 이게 무슨 전통체험활동도 아니고 대회를 열어서 수상자는 다 뽑아놓고 뻔히 수상자가 있는데 아무나 대역을 썼다는게 상당히 기분 나빴다. 대리수상?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진행자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진행을 끝내고 자신은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그저 제를 올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잘 찍힌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우리와 함께 온 담당자분께서도 이건 아니다 싶으셨는지 진행자에게 식을 다시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진행자는 이미 진행한 걸 어떻게 하겠냐며 그냥 넘어가자고 하는 것이다. 







  여러 고전문학작품을 통해 양반의 허례허식에 대해 배워 왔지만 이만큼 절실히 와닿는 순간은 없었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시상식? 수상자? 장원급제한 자의 진심이 담긴 의지를 구암 이정 선생께 올리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구암 이정 선생께 술 한잔 올리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곤 구암 이정 선생을 기려서 우리가 이토록 값진 일을 했다 하고 알리기 바쁠테지. 그저 웃음만 나온다.


  구암 선생님은 어떠셨습니까, 술 맛이.

  
  이러한 일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형식적인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일상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나 역시 이러한 형식주의에 얽매여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굴복해선 안된다. 너무도 형식적이게 얽매인 이 세상을 자유롭게 풀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조금 더 근면하게, 조금 더 성실하게, 조금 더 비판적이게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더이상 구시대의 더러운 잔재를 남기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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