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일상, 생각열기

120203 슬픈고리

by 렌딜 2012. 2. 3.
728x90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방법은 거시적 방법 즉 역사의 중요한 사건 특히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중심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과거의 흐름을 알기에도 적합하고 배우는 입장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배운 역사는 과거를 정말 과거의 그 순간으로 놓아버린다. 우리는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에서 책을 통해 그 순간을 관찰한다. 그 어느 것도 살아 숨쉬지 않고 뜨겁게 요동치지 않는다. 깔끔하고 차분하게 정리되어 눈 앞에 기다린다.

난 설 헌.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의 나를 반성했다. 역사를 좋아하고 나름 국사를 잘한다고 자부심을 가진 (단순히 수능 사회 탐구 영역의 국사 과목에 한정된 것이 아님) 내가 얼마나 경솔했는지 부끄럽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역사 공부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며 허구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고 때론 가슴 아파하면서 역사가 지니는 의미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었다.

미시적 방법.
거시적 방법과는 달리 일화, 인물, 특히 왕과 귀족 중심의 사료에서 벗어나 평민과 아녀자, 천민 한 개개인의 삶을 통해 과거를 느낀다. 이 책은 내게 미시적 접근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경험인지를 느끼게 깨우쳐 주었다.

교과서로는 참 지겹게 읽고 외웠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다고.
칠거지악. 삼종지도. 정절. 열녀. 남녀칠세부동석.
지독히도 잘 알고 있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었지만 책을 통해 접한 난설헌의 삶은 진부하지도 식상하지도 않았다. 붓의 마력이란 것일까. 작가의 섬세한 묘사에 잠시나마 그 시절 여성이 된 것마냥 가슴에 갑갑함이 가득했다. 때론 난설헌의 열렬한 팬이 되어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함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불평등은 어느정도 남아 있지만 이 세상 여성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보다는 참 감사하게 여겨졌다. 누군가는 그 시절 가부장적 유교질서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질서 속에서 남성이라는 튼튼한 버팀목의 뒤에 쪼그려 숨지 않으면 당당하게 사회에 설 수 없냐고 묻고 싶다.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말 자체가 참 부끄럽다.

그리고 오늘날 원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집안을 견주어 결혼하는 모습이 참 슬펐다. 사랑하지도 않지만 평생 따라야하는게 법도인 그 시절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떠나는게 옳다. 억지로 붙잡혀 있는거라면 너무도 슬프다. 둘 모두에게 상처가 되고 사랑은 슬픔이 된다. 이별은 죄악이 아니다. 젊었을 때의 이별은 성숙통이다. 마음 한 구석이 몽우리가 생겨 아파오는 것. 그 것과도 같다. 사랑해도 떠나는 일이 있다. 비겁한 행동이지만 어리석다고 너무 매도하면 안된다.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건 정말 아프다. 진짜로.


300x250

'라이프 > 일상, 생각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0301 결자해지  (2) 2012.03.02
120205 광대  (2) 2012.02.06
120203 소중함  (0) 2012.02.03
120202 고백  (0) 2012.02.02
수능 끝난 고3의 심심.  (4) 2011.11.13